자동차에 관심이 없더라도 혼다 시빅이라는 모델명을 한 번 이상 들어 보셨을 겁니다. 만약 학창 시절 이니셜D 만화책을 보았다면 테이프 데스매치 제안을 해서 비열한 방법으로 타쿠미를 이길 뻔했던 싱고의 애마 혼다 시빅 EG6 자동차 배출가스와 지구온난화 등 환경에 관심이 높은 사람이라면 미국에서 배출가스의 90%를 줄이라는 일명 머스키법이 발효되면서 당시 미국 빅 3 메이커들이 머리를 싸매며 멘붕하고 미국 정부를 향해 극렬하게 반대했지만 혼다는 그러한 미국 빅3 메이커들을 비웃듯 머스키법 규제를 만족하는 CVCC 엔진을 탑재한 시빅을 선보입니다.
저는 시빅을 학창 시절에는 이니셜D를 통해 알게 되었지만 뒤이어 혼다라는 브랜드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게 되면서 참 대단한 자동차 메이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혼다 입장에서 미국 머스키법이 발효되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크게 성장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현재 판매되는 혼다 시빅은 9세대 모델이며 국내 수입 판매되는 시빅은 최고출력 142마력, 최대토크 17.7kg.m의 힘을 내는 1.8L 가솔린 엔진 한 가지만 탑재되며 변속기는 5단 자동변속기입니다. 파워트레인 수치만 보면 딱히 뛰어난 구석이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특이한 점은 지금 다른 완성차 업체에서 쓰지 않는 SOHC 엔진이 적용되었다는 점입니다.
SOHC 엔진은 Single Over Head Camshaft의 약자입니다. SOHC 엔진은 1개의 캠샤프트가 흡기 배기 밸브를 여 닫는 역할을 했습니다. SOHC 엔진은 DOHC보다 구조가 간단하고 낮은 rpm에서 최대토크가 나오기 때문에 DOHC 보다 연비가 좋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캠샤프트가 흡기와 배기 밸브 움직임을 모두 담당하기 때문에 DOHC 엔진보다 고회전을 쓰기 어렵고 고회전에서 저항이 더 크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1990년대 국산 자동차 광고 및 카다로그를 보면 DOHC 엔진 대비 SOHC 엔진의 최고출력이 현저히 낮은 걸 보실 수 있을 겁니다. SOHC 엔진 최고출력이 DOHC 엔진보다 낮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V-TEC, VVT 밸브트로닉 같이 밸브를 회전수에 따라 가변적으로 제어하는 기술 그리고 더 가볍고 강성이 뛰어난 소재들이 발달하며 엔진에 적용되면서 DOHC 엔진으로도 낮은 rpm에서 강력한 토크를 낼 수 있게 되었고 효율성이 더 좋아지면서 SOHC 엔진을 굳이 쓸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혼다 시빅에 탑재되는 1.8L 가솔린 엔진은 SOHC 엔진이 적용되었습니다. 8세대 시빅까지 2.0L DOHC 엔진 라인업이 있었는데 현재는 탑재되고 있지 않습니다. 대신 고성능 모델인 시빅 Si 모델에 최고출력 205마력을 내뿜는 고성능 2.4L DOHC 엔진이 탑재 판매되고 있습니다.
사실 동력성능에 대해서는 쓰고 싶은 말은 없습니다. 그냥 무난합니다. 현대 아반떼 MD, 기아 K3 등과 비교해서 아주 조금 더 잘나가는 정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힘이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말해서 짜릿한 스포츠주행과는 거리가 먼 모델입니다. 연비도 뭐 공인연비만큼 나오는 편이지 딱히 연비가 좋은 편은 아닙니다.
누구나 타면 탈수록 만족하는 혼다 시빅
하지만 시빅은 뒷좌석 탑승자들을 배려하는 패밀리 세단의 기본을 충실히 지켰습니다. 다만 아반떼MD, K3, 크루즈 등과 비교해 보면 편의사양이 부족하고 인테리어 디자인이 화려한 아반떼MD, K3 인테리어를 보다가 수수하고 간결한 시빅 인테리어를 보면 뭔가 만들다 만 듯한 느낌을 받을 겁니다. 시빅의 국내 판매가격이 2,790만원으로 책정되어 있어 국산 준중형 세단보다는 가격이 비싸지만 가격 차이가 큰 편은 아닙니다.
시빅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가죽 시트입니다. 제가 가죽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시빅 시트에 적용된 가죽이 천연가죽인지 인조가죽인지 정확히 판별할 수는 없지만 시트에 착석할 때 상당히 부드럽습니다. 제차가 아반떼 쿠페 모델이고 시트가 가죽으로 마감되어 있는데요. 아반떼 쿠페나 세단 둘 다 시빅의 가죽 재질에는 크게 뒤집니다. K3, SM3, 크루즈 또한 눈으로 볼 때는 고급스럽지만 착석할 때 부드러운 느낌은 시빅에 뒤집니다.
시트 재질은 물론 시트 쿠션이나 등받이 엉덩이 받침 등 모든 면에서 만족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장거리 주행을 해도 허리가 아프거나 피곤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조수석이나 뒷좌석 시트 또한 착석할 때 느낌이 상당히 좋습니다.
캡포워드 디자인이 적용되어 본넷이 짧게 설계된 시빅은 본넷 디자인조차 쐐기형 디자인이어서 조금 왜소해 보입니다. 그래서 실내 공간이 좁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실내공간은 의외로 넓어 아반떼 MD, K3 하고 비슷합니다. 오히려 전면 시야가 탁 트인 개방감이 좋고 좌회전할 때 아반떼 MD는 A 필러가 운전자의 시야를 가려 불편했지만 시빅은 그러한 단점이 없었습니다.
대시보드가 낮기 때문에 계기판을 보려면 시선을 아래로 내려봐야 하는 불편함이 있는데요. 시빅은 디지털 속도를 대시보드 위쪽으로 올리고 타코미터 등의 나머지 계기판 정보들을 아래로 분리하여 속도만 볼 때 시선을 아래로 내리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시빅의 장점은 리어 서스펜션이 멀티링크 서스펜션이 탑재되어 비포장도로, 요철 구간 등에서 일체차축식 서스펜션이 탑재된 대부분의 국산 준중형 모델보다 승차감이 좋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등판능력이 아쉬운 시빅 하이브리드
시빅 하이브리드는 현재는 국내에서 판매를 하지 않습니다. 국내 공인연비는 복합연비 기준으로 18.9km/l인데 트립 기준으로 시내와 고속도로 절반씩 비율로 주행하면 복합연비 이상의 연비를 낼 수 있습니다. 특히 시내주행에 특화된 토요타 THS 시스템의 경우 고속도로 주행이 잦으면 높은 연비를 기대할 수 없지만 시빅의 경우 고속도로에서도 모터가 엔진의 동력을 보조하기 때문에 고속도로 연비도 훌륭합니다.
시빅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은 최고출력 91마력 최대토크 13.5kg.m의 힘을 내는 1.5L 가솔린 엔진 그리고 17kw의 힘을 내는 전기모터가 결합된 파워트레인입니다. 혼다에서는 이 파워트레인을 IMA(Integrated Motor Assist)라고 명명했으며 전기모터가 엔진과 별개로 독립적으로 구동력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고 엔진의 동력에 보조하는 역할을 합니다.
다만 한 가지 결점이 있습니다. 아주 가파른 오르막에서 등판능력이 형편없다는 점이죠. 지난 8세대 시빅 하이브리드에서도 제기되었던 문제인데요. 제가 시빅 하이브리드를 시승할 때 혹시나 해서 8세대 시빅 하이브리드 테스트한 장소에서 동일한 실험을 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올라갑니다. 하지만 아주 힘겹게 올라가며 몇 번 시동이 꺼진 끝에 겨우 등판할 수 있었습니다. 시빅 하이브리드 뿐만 아니라 같은 장소에서 전기차 모델인 쉐보레 볼트 등판능력 테스트를 했는데 시빅 하이브리드 보다는 수월하게 올라갔지만 일반적인 내연기관을 탑재한 승용차보다는 등판능력이 약했습니다.
이 문제는 비단 시빅 뿐만 아니고 다른 하이브리드카 그리고 전기차가 해결해야 할 숙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16년형 시빅을 기다리며
2011년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혼다 시빅은 이제 늦어도 내년에는 완전히 새로운 10세대 모델이 출시됩니다. 이미 올해 4월에 개최된 뉴욕모터쇼에서 10세대 시빅을 선보였는데요. 엄밀히 말해서 이 모델은 아직 완전히 양산형 모델이 아닌 컨셉 모델입니다.
주목할만한 점이 있다면 10세대 시빅 컨셉 모델은 세단형 쿠페 모델입니다. 사실 뒷좌석 탑승이 불편한 쿠페 모델 판매량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판매량이 적습니다. 혼다가 시빅 컨셉 모델을 세단이 아닌 쿠페 그리고 상당히 튀는 연두색 계통 바디컬러를 입혀 모터쇼에 공개한 것은 자신만의 개성을 중시하고 스포츠주행을 선호하는 젊은 소비자들을 사로잡겠다는 의지로 보입니다.
10세대 시빅은 엔진도 업그레이드 되어 최고출력 165마력을 내는 2.0L 가솔린 엔진과 함께 최고출력 167마력 최대토크 26.4kg.m의 강력한 힘을 내는 1.5L 가솔린 터보 엔진이 탑재되어 시빅 역사상 최초의 가솔린 터보 엔진이 탑재됩니다. 공교롭게도 10세대 시빅이 출시될 때 현대 아반떼 후속모델 그리고 얼마 전 공개된 쉐보레 크루즈 신형 모델이 늦어도 2016년 초 다 같이 출시될 예정입니다. 따라서 2016년에는 미국 컴팩트 세단 시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런데 신형 모델이 출시되면서 사이즈가 조금씩 커지니 컴팩트카보다는 미드사이즈로 분류하는게 맞을거 같네요.
화려하지 않지만 실속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편안한 탑승을 보장하는 혼다 시빅 늦어도 내년에 선보일 10세대 시빅은 어떤 개선이 이루어지고 어떤 진화를 할 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