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담 중에서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다 다리가 찢어진다. 라는 속담이 있죠. 자기 능력 밖의 일을 억지로 하면 해를 입는다는 뜻을 지닌 속담입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회사원이든 자영업이든 때로는 자기가 감당하지 못할 거 같은 일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태가 되기 쉽거든요 특히 경쟁과 일등주의, 상명하복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말이죠. 


그런데 세계 일류기업이 되려면 남들보다 더욱 노력을 해야 하고 특히 기술력과 인지도가 낮은 후발주자 기업은 더욱 노력을 해야 합니다.  과거 대우차가 현대차 대비 독자기술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 도태되었고 IMF 이후 자금난을 겪다가 결국 GM으로 넘어갔죠. 현대차 비판 받아야 할 점 많지만 한편으로는 독자적으로 기술을 개발해서 세계 10위 이내 자동차업체로 성장한 점은 칭찬해줘야 하겠죠.


지금 미국 뉴욕에서는 뉴욕오토쇼가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자동차시장 중 하나인 미국에서 열리는 오토쇼이기 때문에 완성차 업체들이 신모델과 컨셉카들을 잇따라 선보이고 있는데요 현대차 또한 자사의 하이브리드카 아이오닉 포함해서 제네시스 G80, G90 등 양산차와 함께 4도어 스포츠 세단형 콘셉트카 '뉴욕 콘셉트'를 선보였습니다. 이미 포털뉴스를 통해 제네시스 '뉴욕 콘셉트'가 소개됐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현대차그룹이 제네시스 브랜드를 따로 런칭하고 '뉴욕 콘셉트’ 컨셉카를 선보인 이유는 제네시스 브랜드 런칭 후 우리나라와 함께 가장 많이 판매될 지역이 미국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제네시스 브랜드 주력 모델인 G80(국내명 제네시스)이 지난해 미국 시장에서 메르세데스-벤츠 E 클래스, BMW 5 시리즈에 이어 럭셔리 미드사이즈 세단 부문 3위를 차지할 정도였고 미국에서 평가도 높은 편입니다. 


다만 메르세데스-벤츠, BMW가 전세계적으로 럭셔리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는데 현대차는 우리나라를 제외하면 럭셔리와 거리가 있는 브랜드입니다. 그래서 과거 토요타, 혼다, 닛산에 했던 것처럼 고급 브랜드를 출시해 더욱 고급스러운 품질과 성능으로 무장한 고급세단부터 출시한 사례를 벤치마킹해 별도의 럭셔리 브랜드 제네시스를 런칭하게 됩니다.


미흡했던 1세대 제네시스



그런데 현대차가 제네시스 브랜드를 런칭한 건 최근에 갑자기 결정한 건 아니었습니다. 2008년부터 출시한 1세대 제네시스가 출시될 때부터 현대차는 별도의 럭셔리 브랜드를 런칭할 수도 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하지만 브랜드 런칭을 쭉 미루다가 2015년 하반기 제네시스 브랜드를 본격적으로 런칭하면서 제네시스 브랜드 컨셉카 비전 G 아직 공개하지 않은 플래그십 대형세단 EQ900에 반투명 위장막을 씌운 모델을 내세워 현대차그룹의 럭셔리 브랜드 제네시스 런칭을 전세계에 알렸습니다.  


그렇다면 1세대 제네시스가 생산된 시기였던 2013년 이전에는 왜 럭셔리 브랜드를 런칭하지 못했던 걸까요? 제 생각에는 품질이나 성능 모든 면에서 아직 미흡했다고 현대차그룹이 판단한 듯 싶습니다. 


실제로 1세대 제네시스 출시 초기 스펙만 따지면 상당히 화려하며 전 후륜 서스펜션을 5링크로 설계해 운동성능, 승차감 모두 만족시킨다고 홍보했습니다. 그 당시 현대차는 대놓고 벤츠 E 클래스, BMW 5 시리즈를 경쟁 차종으로 내세우며 두 모델과 같이 비교시승을 할 정도로 자신감을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제가 타본 1세대 제네시스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특히 당시 하위 트림이었던 제네시스 330 럭셔리 그리고 제네시스 380 에어 서스펜션이 탑재된 모델 등을 시승했었는데요. 380에 에어서스펜션이 탑재된 모델은 주행성능 자체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특히 당시 탑재한 렉시콘 오디오 음질 수준은 세계적인 최고급 세단들의 오디오와 비교해도 전혀 떨어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제네시스 330 럭셔리는 시승하면서 정말 실망했었습니다. 이 당시 제네시스 럭셔리 트림이 4500만원 이지만 렉시콘 오디오 시스템이 아닌 기본 오디오는 음질이 저질 수준이었고 에어 서스펜션이 탑재되지 않은 일반 유압식 서스펜션은 고속도로에서 속도를 높이거나 코너를 돌 때마다 심한 불안감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2010년 운 좋게도 다른 블로거분들과 같이 캐딜락 CTS와 비교시승을 할 수 있었는데 뒷좌석 공간이 CTS가 좁고 뒷좌석 시트가 제네시스보다 살짝 불편하다는 점을 제외한 나머지 면에서 CTS보다 열세였습니다. 또한 결정적으로 당시 CTS 럭셔리 트림 가격이 제네시스 330 럭셔리보다 가격이 오히려 더 저렴했습니다. 


그 당시 1세대 제네시스를 시승할 때는 다이나믹 럭셔리를 표방하면서 왜 이렇게 주행성능이 좋지 않을까? 라는 의문이 머릿속에 남았지만 생각해 보니 현대차가 다른 수입차 브랜드와 비교해 후륜구동 대형세단을 자체적으로 설계하고 만든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관련 기술 노하우가 부족했던 것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담이지만 5년 전 우연한 기회에 현대차 직원으로부터 제네시스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요. 그 당시 현대차가 생산한 차 중에서 가장 원가절감을 안한 차가 제네시스라고 합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에쿠스인줄 알았거든요. 하지만 제네시스가 포진한 미드사이즈 럭셔리 세단이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수요가 높다는 점을 생각하면 현대차가 E 클래스, 5 시리즈 등과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현대차가 보유한 기술이나 원가를 아낌없이 투입했다. 라는 설명을 들을 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네시스 브랜드 색깔이 부족하다.



아마 자영업자나 기업의 임원으로 재직하신다면 선택과 집중이라는 문구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문어발식으로 폭넓은 경영보다는 한 분야에 전문적으로 집중하는 것이 성공한다는 뜻이죠.


현대차가 제네시스 브랜드를 런칭할 때 현대차 정의선 부회장은 “제네시스 브랜드는 ‘인간 중심의 진보(Human-centered Luxury)’를 지향한다” 브랜드 방향성을 제시했고 이후 제네시스 EQ 900을 출시했습니다.


그런데 이것만 봐서는 제네시스 브랜드만의 색깔이 부족합니다. 더 고급스럽고 더 안전한 자동차는 사실 다른 완성차 업체와 브랜드에서도 언급했던 겁니다. 안전이라고 해서 볼보처럼 세계 최초의 안전 기술을 탑재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BMW처럼 효율성과 운전의 즐거움을 살린 개성도 없죠.



정의선 부회장의 브랜드 방향성은 럭셔리 세단의 기본에 충실하겠다. 라는 의지라고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브랜드와 비교해 차별성이 없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은 제네시스 브랜드를 성공시키려면 이러한 개성과 차별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제가 제목에 뱁새, 황새를 언급했는데 뱁새는 제네시스이고 황새는 뭐 아시겠지만 벤츠, BMW, 아우디 등의 브랜드라고 볼 수 있죠.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합니다. 제네시스는 아무리 포장 잘해도 브랜드 가치는 아직 뱁새 수준이에요.


하지만 한번 뱁새가 영원한 뱁새라고 단정 지을 수 없이 현대차그룹의 노력에 따라 제네시스 브랜드가 황새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기나긴 시간과 인내 노력 무엇보다도 남들이 못한 아이디어를 구체화시켜 제품으로 내놔야겠죠. 제가 지금 현대차를 소유하고 있는 만큼 현대차그룹이 야심차게 런칭한 제네시스 브랜드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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